내가 만 20세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아무렇지 않게 앉았었다.
그때 지하철 문화는 그저 앉아있다가 자리를 양보하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노인 혹은 약자에 해당하면 분이 지하철에 탑승하시면 자리를 양보를 해드렸고 만약 노약자석 외에 다른 자리가 비어 있다면 그분은 자리를 양보받지 않고 다른 자리에 가서 앉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굳이 꼭 노약자석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고 꼭 노약자석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90년대 2000년대에는 그랬었다. 지금은 저렇게 자리가 비어있고 지하철이 한산해도 절대 저 노약자석은 앉지 않는다.
지하철 문화는 언젠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종종 그 시작이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지만 정확하게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가장 흔하게 사람들이 그 시작이 어디냐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주장하는 것이 박카스 광고가 바람을 넣어서 그때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광고 하나가 그렇게 바꿨다고 믿기보다는 90년대 말부터 시작되고 점점 가속화된 세대 간의 깊은 갈등의 무수한 결과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최근에 지하철을 탔는데 이렇게 마련되어 있는 임산부들을 위한 임산부 배려석이 그 복잡한 퇴근길에 비어있는 것을 보고 조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초기 임산부들의 어려움과 말 못 할 고통을 직접, 간접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좌석 자체에 거부감이 있진 않지만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공간을 한 가지로 정의해두면 여러 가지 피곤한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썩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퇴근길에 임산부 배려석 자리가 비어있는데 그 자리에 쏙 하고 앉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감수하고 앉을 산모가 몇 명이나 될까?
저렇게 해두면 민망해서 앉으라고 해도 못 앉을 판국이다.
세대 간의 갈등의 산물로써 노약자석이 그 상징이 되었다면 임산부 배려석은 남녀 간의 갈등의 산물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필요에 의해 공간을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그 공간을 절대적으로 만들 필요까지가 있을까 싶다.
남자가 앉았다고 몰래 찍어 커뮤니티에 공개 망신을 주는 행동이 이 사회를 얼마나 이롭게 만들까?
노약자가 아닌 사람이 경우와 상황에 따라 자리에 좀 앉을 수도 있고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가 좀 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 자리는 자리대로 존재하고 다만 그 자리의 정체성이 있기에 그 자리에 먼저 앉은 사람은 스마트폰 하면서 고개 푹 숙이고 있지 말고 앉아 마땅한 대상이 나타났을 때 흔쾌히 양보를 할 마음을 갖고 그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누가 앉든 그게 뭐 큰 문제일까 싶다.
지금 여성 전용 주차 자리는 양보와 배려의 의미일 뿐 남성 운전자가 주차를 한다고 신고를 당해 범칙금이 나온다던가 하는 불이익은 없다.
자리가 넉넉하지 않게 비어있다면 혹시 나 다음 주차하러 오는 여성 운전자를 그저 배려해서 조금 뒤쪽으로 주차해도 되고 아니면 그냥 주차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사람들의 생각은 워낙 많고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룰과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그냥 모두 지키는 것인데 너무 세분화하여 계층과 성별을 구분한다면 사회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그 집단에 대한 이미지를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부정적으로 정의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생기는 건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러한 경계와 서로 간의 공간을 너무 칼 같이 분리하는 문화는 이제 그만 멈췄으면 싶다.
'Social Critic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래 들으며 하루에 10 ~ 30분이면 가능한 부업, 인콘 조달 플랫폼 (0) | 2022.04.18 |
---|---|
상담문화가 더 발달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 (0) | 2021.03.01 |
꼰대에는 나이도 성별도 없다!! (0) | 2021.02.28 |